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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중심] 쇠사슬에 묶여 귀환한 한국 노동자들 — ICE 구금과 전세기 이야기

by 식빵브라더 2025.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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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간 외교적 신뢰 문제

 

 

갑작스러운 단속

9월 초, 조지아주의 대규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은 평소처럼 분주했다.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진행하는 글로벌 프로젝트, 그곳에서 수백 명의 한국인 노동자가 하루 열두 시간 넘게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예고 없는 단속이 들이닥쳤다. ICE 요원들과 국토안보부, 연방수사국(FBI) 인원까지 합세한 대규모 단속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우리를 버스에 태웠습니다. 손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졌고, 허리에도 철제 띠가 걸렸습니다.”
박모 씨(38세)는 체포 당시를 이렇게 증언했다. 노동자들은 저마다 다른 비자를 가지고 미국에 들어왔지만, ICE는 그들의 체류 자격에 문제가 있다며 일괄적으로 구금했다. 체포된 인원은 475명, 그중 한국인만 316명에 달했다.



낯선 감옥에서의 며칠

노동자들이 끌려간 곳은 포크스턴에 위치한 ICE 구금시설이었다. 언어도, 제도도 낯선 곳에서 며칠을 보내는 동안, 이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한 50대 노동자는 “밤마다 아이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식사와 휴식은 보장됐지만, 불확실성이 더 무서웠다. 언제 풀려날지, 추방당하는 건 아닌지, 귀국 후 일자리는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 문제가 심각했다. 고혈압 약을 제때 복용하지 못한 이, 지병을 관리하지 못한 이들이 잇달아 호소했고, 일부는 구금 기간 중 의료진의 돌봄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더 큰 상처는 정신적 충격이었다.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는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는 말은 많은 노동자들이 공통으로 내뱉은 이야기였다.

 



귀환을 둘러싼 선택

사태가 커지자 한국 정부가 나섰다. 외교부와 산업부, 대통령실까지 즉각 협의에 들어갔고, 미국 측과 협상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은 자발적 귀국(voluntary departure) 절차를 밟는 대신 신속히 석방돼 귀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가 처음부터 귀국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 정부는 일부 인력이 현지에서 계속 남아 미국인 근로자 교육을 담당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남아서 일하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기 체류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다. 결국 대다수는 귀국을 선택했다.

“억울하지만 가족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살아 돌아가는 게 우선입니다.”
이 말은 많은 노동자들이 같은 마음으로 공유한 현실적 결단이었다.

 



전세기에서의 풍경

9월 11일, 노동자들을 태운 전세기가 인천으로 향했다. 비행기 안은 안도와 허망함이 뒤섞인 공기였다. 누군가는 눈물을 훔쳤고, 누군가는 조용히 창밖만 바라봤다.

비행기에는 의료진도 동행했다. 구금 기간 동안 건강이 악화된 이들을 위해 좌석 배치가 조정됐고, 혈압약과 응급 처치가 제공되었다. 한 40대 노동자는 “불안 때문에 잠을 못 자 가슴이 답답했는데, 한국 의료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출처 뉴스핌


인천공항에서의 재회

전세기가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자, 도착 게이트 앞에는 이른 새벽부터 가족과 지인들이 몰려들었다. 입국장 문이 열리고 하나둘씩 노동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곳곳에서 울음과 환호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아버지를 기다리던 한 초등학생은 “아빠!”라고 소리치며 달려가 품에 안겼고, 수개월간 남편의 귀국만 기다려온 아내들은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많은 노동자들은 가족의 손을 꼭 잡고 연신 “미안하다, 걱정시켜서”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공항 분위기는 단순한 귀국 현장을 넘어 작은 환영식 같았다. 일부 시민단체는 “노동자도 국민이다”, “인권을 존중하라”는 피켓을 들고 현장에 섰고,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는 끊임없이 터졌다.

그러나 감격의 눈물 속에도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가족을 다시 만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했는지에 대한 허탈감이 뒤섞여 있었다. 한 노동자는 아내와 아이를 끌어안은 채 짧게 말했다.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지만, 다시는 이런 모습으로 공항에 서고 싶지 않습니다.”

 



남겨진 질문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단속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러 중요한 쟁점을 한국 사회와 기업, 그리고 양국 정부에 던졌다.

비자 제도의 불확실성
노동자들은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고 생각했지만, 미국 당국의 해석은 달랐다. 파견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책임은 불분명해졌다.

기업의 준비 부족
글로벌 대규모 프로젝트에 수백 명의 인력이 투입됐음에도, 비자 관리와 법적 검토는 충분히 체계적이지 않았다.

인권 존중의 필요성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장면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닌 인권 침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 사회가 강하게 반발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외교적 신뢰
동맹국의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대거 구금 사태가 벌어진 것은 외교적 파장으로 이어졌다. 투자 환경 안정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다시 일상으로

귀국한 노동자들의 삶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당장 생계부터 걱정해야 하고, 해외 취업 경험의 상처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귀환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과제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
귀환 노동자들의 이 짧은 요구는 곧 한국 정부와 기업, 그리고 사회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다. 비자 관리 체계, 기업의 책임 강화, 외교적 협력, 그리고 노동자 인권 보호. 이번 사건이 던진 교훈은 분명하다.

 


맺음말

ICE 단속으로 시작된 구금과 귀환은 개인의 고통을 넘어 국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국경을 넘는 노동과 투자가 늘어나는 시대, 제도적 허점과 인권 보호의 균형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쇠사슬에 묶였던 노동자들이 전세기를 타고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은, 단지 한 사건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의 권익과 글로벌 사회의 책임을 되묻는 역사적 장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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